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제목 그대로 한 시절의 공기를 그대로 꺼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보고 있는 동안 이상하게 자꾸 과거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교실 창가, 괜히 이유 없이 웃던 친구들, 그리고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남겨둔 누군가까지. 이 영화는 첫사랑을 미화하기보다는, 그 시절의 어설픔과 미완성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는 데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야기의 출발과 영화의 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공부에는 큰 관심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전부였던 소년과, 반에서 늘 단정하고 모범생이었던 소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서로를 의식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빠르게 요약하지 않고, 사소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쌓아 올립니다. 시험지 위의 낙서, 벌을 받으며 마주친 순간, 괜히 더 크게 웃어 보이던 태도 같은 것들이 관계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보다 ‘흘러가는 시간’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는 점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자주 엉뚱한 선택을 하고, 소녀는 그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거리를 유지합니다. 영화는 이 엇갈림을 답답하게 몰아붙이기보다, 그 나이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고 이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관객은 어느 한쪽을 탓하기보다는,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점점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됩니다. 함께했던 시간은 분명 있었지만, 그 시간만으로 모든 걸 이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영화는 이 변화를 크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리감이 생긴 눈빛, 예전 같지 않은 대화의 온도 같은 작은 신호들로 충분히 전달합니다.
원작과 한국 영화의 차이
이 작품은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원작으로 한 한국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이 대만 특유의 학창 시절 분위기와 밝고 경쾌한 정서를 바탕으로 했다면, 한국 영화는 감정을 조금 더 눌러 담은 방향을 선택합니다. 웃음의 밀도는 줄어들고, 대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시선이 더 짙어졌습니다.
특히 인물 표현에서 차이가 느껴집니다. 원작의 소년이 비교적 직선적이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면, 한국 영화 속 소년은 더 망설이고, 마음을 안으로 숨깁니다. 이는 한국 영화 특유의 정서와도 잘 맞닿아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친 뒤에야 후회하는 감정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이 변화 덕분에 같은 이야기라도 체감되는 감정의 온도는 꽤 다르게 느껴집니다.
결말을 향해 가는 방식 역시 미묘하게 다릅니다. 원작이 첫사랑의 추억을 비교적 선명한 이미지로 남긴다면, 한국 영화는 조금 더 흐릿하고 현실적인 여운을 택합니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감각이 더 강하게 남습니다. 그래서 엔딩을 보고 나면, 아쉬움보다는 묘한 담담함이 먼저 찾아옵니다.
보고 난 뒤 남는 감정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보고 나서 큰 감정을 폭발시키는 영화는 아닙니다. 대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괜히 비 오는 날 생각나거나, 예전에 쓰던 교복을 떠올리게 만드는 식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첫사랑 역시 늘 어설펐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첫사랑을 ‘잘된 이야기’로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아했지만 말하지 못했고, 가까웠지만 끝내 닿지 못했던 감정을 그대로 두고 지나갑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특정 인물의 로맨스라기보다, 한 시절을 통과해 온 모든 사람의 기억처럼 느껴집니다. “그땐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그랬기 때문에 그 시절이 남아 있구나”라는 감정이 동시에 남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화려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조용히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학창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떠올릴 얼굴이 있고, 말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 기억을 살짝 건드려 놓고 갑니다. 그래서 보고 난 뒤 괜히 마음이 조용해지는 영화,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이라고 느꼈습니다.